이주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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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9/24 우즈베키스탄 탐방 1
 
이름 : 김봉구 2006-09-26 20:45:13, 조회 : 4,005, 추천 : 473

성경말씀 : 신명기 10 : 18-19
설교제목 : 우즈베키스탄 탐방 1


우즈벡 항공을 탔다. 국내항공보다 저렴해 우즈벡 노동자들이 귀국할 때 주로 애용하는 항공이다.
유가상승으로 국내항공의 식사 서비스 질이 떨어지고,
식비를 탑승객에게 부담하겠다는 등의 보도로 승객들의 불만을 사고 있는반면 우즈벡 항공이 제공하는 식사는 매우 좋았다.


우즈벡까지 비행시간은 대략 7-8시간 걸린다.
중국과 키르키스탄을 거치는데 키르키스탄의 하늘 밑을 바라보니 구름이 보이고 구름 밑에 만년설이 보인다.
겨울도 아니고 여름에 빙하라니? 키르키스탄은 7,000M나 되는 산들이 많아 1년내내 눈으로 덮여 있는 만년설이 많다.


거제도에서 배를 만드는 일을 하는 우즈벡 노동자들이다.
한달 휴가를 얻어 고향인 하리즘으로 가는 친구들을 비행기 안에서 만났다.
연수생인 경우 1년에 한번 정도 1달간의 휴가를 보내주는게 관례인데
한국에서 가까운 동남아시아 친구들은 짧게는 1주일 휴가를 가기도 한다.
오래간만에 고향을 찾는 이들은 매우 들떠 있었다. 왜 기쁘지 않겠는가?


뒤쪽에 나와함께 앉아 가는 친구는 화성 유리공장에서 일하다 귀국하는 친구다.
우즈벡에서 가장 큰 나보이주에 산다면서 사마르칸트에 와서 전화하면 사마르칸트로 온다고 했다.
사장님이 귀국 비행기 티켓도 사주고 선물도 사주고 매우 고마운 분이라며 나보고 선물을 전해달라고 했다.
나는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말했고 사마르칸트에 왔을때 전화연락을 했으나 통화가 되지 않았다.
통화가 되지 않은 이유를 알아보니 전화요금을 내지 않으면 전화통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와 만나지 못해 그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못내 미안했다.

앞자리에 앉은 아주머니는 키르키스탄에 사는 분인데 대구로 시집 간 딸을 만나고 귀국하는 길이었다.
우즈벡에서도 한국으로 시집을 많이 가는데 키르키스탄에서도 시집을 갔다니 이들에게 한국은 기회의 땅임이 분명하다.
이주노동자들은 대개 급행료를 주고 한국에 온다.
우즈벡은 아직 민주화가 이루어 지지 않았기 때문에 부패지수가 높다.
한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한국행을 원하는 사람들은 많고 인원은 한정되어 있기에 공무원들은 급행료를 많이 주는 순으로 인원을 선발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쯤 우즈벡에도 민주화가 이루어질까?
한국으로 시집을 가는 이주여성들은 이들보다 형편이 안좋은 경우가 많다.
비싼 급행료를 니기 어렵고 오히려 결혼을 댓가로 지참금을 받는 경우다.
국제결혼업체의 난립으로 인해 국제결혼 건수는 늘어나지만 사후관리가 안돼 많은 사회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얼마전 정부는 국제결혼업체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신고제에서 등록제로 변경했지만
이정도 가지고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정부는 04년 8월 고용허가제를 시작했는데 고용허가제는 국가간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여 한국에 필요한 노동인력을 수급하는 정책이다.
2006년 현재 양해각서를 체결한 국가는 우즈벡,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몽골 인데 이들 국가에서 한국에 가기 위해서는 자국에서 한국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에 선발된 명단을 보내면 외국인노동자 고용을 희망하는 업체에서 이들을 채용하는 것이 고용허가제의 주된 내용이다.
한국어시험을 보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언어소통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언어소통이 원활하게 되지 않아 산업재해가 많이 발생하고, 인권침해의 소지도 많고, 한국생활에 여간 불편한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제도로 한국에서 일하고 돌아간 노동자들에게 매우 유리하다.
한국 기업에서도 이들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국인들이 기피하는 3D업종, 특히 제조업체의 인력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만성적인 문제이다.
이들 공장의 대체인력이 바로 이주노동자들인데 이들에게 주는 비자기간은 3년이다.
공장에서 3년 일하면 숙련도, 한국어 구사능력, 한국문화 이해도 등이 높아 사업주 입장에서는 이런 고급인력을 본국으로 보내고 초자를 받아 다시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는 악순환이 매우 비효울적이고 불편하고 생산성 향상에서 큰 타격을 주는 일이다.
이로인해 비자가 만료되도 사업주들은 이들을 귀국시키지 않고 초과체류를 하더라도 더 잡아두고 싶은게 당연한 심정이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들을 보완하기 위해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서 일하고 돌아간 사람들에게 유리하고, 사업주들에게도 이득이 될 수 있도록 한국어시험을 보게하고, 사업주가 고용할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MOU를 체결한 국가들이 한결같이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인력송출과 관련해 급행료를 챙기는 폐단이 여전히 존재하고, 한국어시험 과정을 통한 인원선발도 신뢰하기 어렵고,
이미 한국에 갔다 온 사람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으려하는 문제점 등이 많다.

고용허가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급행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관건이다.
정부는 좀더 강력한 방법을 사용해야 할 것이고,
문제해결을 위해서 인원선발 주최를 상대국가가 아닌 한국대사관으로 이전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으로 시집오는 여자들 역시 한국어 시험을 통과하는 제도도 필요하다.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하고 한국에 와서 이들과 배우자,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무분별한 결혼업체들은 결혼알선 이외에는 아무런 법적 책임이 없다.
그러나 사후 발생되는 사회문제는 고스란히 정부의 몫으로 남게된다. 그래서 이들에게 한국어 교육을 해야한다느니,
전통예절교육이나 문화교육, 요리교육 등을 해야 한다느니 여성부, 복지부, 문화부 등이 난리다. 사후약방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본국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어느정도 의사소통이 가는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결혼시키는 것이
모두에게 이로운 것이 상식인데 정부는 왜 뒷북만 치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다.

오른쪽은 나와함께 가는 다부론이다.
다부론은 한국을 두 번째 온 친구인데 전에는 북한에 진출한 한국기업에서 일해 북한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이번에서 한국에서 일했는데 귀국전 한동안 허리가 아파 우리가 운영하는 무료진료소에서 양, 한방 진료를 받기도 했다.
다부론의 집은 하리즘으로 우즈벡의 수도인 타쉬켄트에서 무려 1,100KM나 떨어진 곳이다.
그는 나와함께 반나절 동안 가족들 선물을 사러 다녔고 비행기 타는 전날 우리집에서 함께 자고 같이 우즈벡 항공을 탔다.


우즈벡 항공의 스튜어디스로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우즈벡에서 10일간 있다보니 이 여자는 러시아로 보인다.
우즈벡은 50여 민족이 함께 사는 다민족국가이다.
1991년 러시아로부터 독립하기 이전에는 러시아 사람들이 인구의 30%나 차지했으나
독립이후 타민족 배타정책으로 지금은 러시아 사람들은 본국으로 많이 귀국하고 10% 정도만 남아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쉬켄트에 도착했다.
우리는 국제항공 옆에 있는 국내항공으로 이동했다.
국내항공 옆의 건물에 조각된 부조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우즈벡의 첫인상은 이들의 예술감각이 매우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느낌은 10일간의 여행이 끝날때까지 지속되었다.


다부론과 함께 하리즘 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국내항공으로 이동했다.
하리쯤까지 무려 1,100KM나 떨어져 있어 택시로는 13시간,
기차나 버스로는 24시간이나 걸리기에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다.
그러나 국내항공은 다음날까지 만석이다. 아뿔사 이제 어떡한다?
13시간 택시를 탈 수 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10일간의 우즈벡 여행에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한국에서 13시간 차를 타본 일이 없는 내게는 매우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4시간이면 가는데 13시간이라니!
베트남에 갔을때 북부베트남 하노이에서 중부베트남 응에안까지 8시간 버스를 탔을때도 무척 힘들었는데
8시간도 아닌 13시간을 택시로 그것도 컴컴한 밤에 이동해야 한다니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다부론 집에서는 양을 잡고 가족들과 동네 사람들이 다부론이 도착하기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으니
다른 방법이 없다.
저녁내내 택시를 타면 아침에는 하리즘에 도착할 수 있기에 그렇게 하기로 하고 먼저 근처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왼쪽은 공항으로 배웅을 나온 유습톤이고 오른쪽은 나와 함께 귀국한 다부론이다.
이들 주식은 빵으로 '리뾰쉬가'라 부른다.
맥주와 40도 짜리 보드카와 야채 샐러드와 샤슬릭이 보인다.
나는 개인적으로 빵을 잘 안 먹는데 이들은 빵이 주식임으로 빵을 먹어야 힘이 난다고 계속 권유한다.
우즈벡은 90%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금기음식인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소고기와 양고기, 닭고기를 먹는다.
샤슬릭은 이런 고기를 꼬챙이에 꽂아 불에 구워 먹는 것을 말한다.
저녁식사 시간에는 타쉬켄트 도시 전체가 샤슬릭 굽는 냄새와 연기로 진동한다.
우즈벡에서는 돼지고기가 소고기와 양고기 보다 비싸다.
그래서 한국에 와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정육점에 가서 소고기를 사려면 너무 비싸 놀란다.
그래서 소고기 먹는걸 엄두내기가 어렵다.
우즈벡에서는 값싼 소고기가 한국에서는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쩔수 없이 값싼 돼지고기를 먹게 되는데 삼겹살 맛에 익숙해 진 이들은 우즈벡에 돌아가
삼겹살이 먹고 싶다고 난리다.


저녁을 먹고 택시를 잡아타고 하리즘까지 13시간을 달렸다. 시속 150-160Km로 말이다.
하리즘 도시 진입전 잠시 휴식을 취하러 차를 멈추었다.
앞으로 보이는게 사막이다. 사면이 다 지평선이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지평선이다. 아무리 달려도 산도 들도 보이지 않는 지평선 뿐이다.
우즈벡 국토의 70%가 황무지다. 그러나 그냥 황무지가 아니다.
그 사막 밑에는 석유 등 천연자원이 무궁무진하다. 석유는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왼쪽은 집으로 가는 다부론, 가운데는 택시기사 수꾸라뜨, 오른쪽은 하리즘 집으로 돌아가는 아줌마다.
택시기사인 수꾸라뜨는 집이 하리즘인데 1주일에 두번정도 타쉬켄트와 하리즘을 오가는 나라시 택시기사다.
요금은 1인당 3만원을 받는다. 세사람이니까 편도 9만원 왕복 18만원을 버는 거니까
1주일에 두번이면 36만원 한달에 144만원 버는 셈이다.
의사나 경찰, 교사 월급이 6-7만원인데 이에 비하면 20배를 더 버는 것이다.
그러나 1400Km를 13시간이나 운전한다면 힘들뿐더러 도로포장이 잘 안돼있어 위험하기도 하고,
유류비와 소모품비 등도 많이 든단다.
그래서 대부분은 보통 시내에서 운전하는 택시운전을 선호하는데 이들은 한달에 10만원 벌기가 힘들다고 한다.
수꾸라뜨는 서울 청계천에서 청바지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돌아간 사람이다.
윗 옷이나 바지가 다 청바지다. 아마 한국에서 귀국할때 가져온 모양이다.
한국에서 돈을 벌고 귀국해 대우 중고자동차 넥시아를 샀다.
한국에서는 씨에로로 파는 차인데 천만원을 주었다고 했다.
안디잔이라는 곳에 대우자동차 공장이 있어 우즈대우차가 인기다.
그런데 우즈벡은 자동차 생산 기술이나 능력이 없어 구소련차와 한국차를 사용하다보니 매우 비싼 편이다.

오른쪽의 아줌마는 나와 69년 닭띠 동갑이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은 우즈벡 여자들이 즐겨입는 평상복이다.
타쉬켄트에 간 이유는 20살의 큰 아들이 러시아로 일하러 가는데 배웅을 갔다가 오는 길이란다.
남편이 이미 러시아에 가서 일하고 있고 본인은 하리즘에서 빵을 구워 팔고 아들, 딸 둘이 더 있다고 했다.
남편이 러시아에서 돈을 벌고 아들도 돈을 벌러 가 마음이 매우 들떠 있었다.
기분이 좋다고 한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우즈벡 사람들은 20살 전후에 결혼을 한다. 빠른 편이다.
18세가 되면 성인으로 대우받고, 남자들은 1년간 군대를 간다. 그리고 제대를 하면 장가를 간다.
한국은 군대 갔다오고, 대학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자금 마련하면 30은 넘어야 하는데
이들은 10년이나 일찍 결혼하는 것이다.

우즈벡은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다. 그래서 가까운 인근나라인 러시아로 돈을 벌러 많이 가는데
러시아에서는 한달에 30-50만원 정도 벌 수 있다고 한다.
한국에 오려면 급행료를 내야하니 돈 없는 사람들은 가까운 러시아로 향한다고 한다.
한국에 돈 벌러 온 러시아 사람들도 많이 봤는데
우즈벡은 러시아로 돈을 벌러가니 얼마나 일자리가 없고 가난한 나라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다부론의 집에 도착했다.
저녁 7시에 택시를 타서 아침 6시에 도착했다.
남한의 4.5배나 큰 나라이니 가능한 이야기이다.
다부론 집 거실로 왼쪽은 다부론의 부인으로 수학선생님이다. 가운데는 어머니 오른쪽은 시집간 여동생이다.
우즈벡 여성들이 즐겨입는 평상복인데 색깔도 다양하고 이쁘다.
면화를 많이 생산하니 옷감은 풍부한 편이다.

앞쪽 왼쪽부터 다부론의 세딸이다.
3년간 떨어져 살았으니 얼마나 딸들이 보고 싶었을까?
다부론에게 이번에는 꼭 아들을 낳으라는 덕담을 빼 놓치 않았다.

다부론이 한국에서 번 돈으로 산 중고차 티고다.
600만원 주고 샀고 영어선생님인 아버지가 출퇴근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뒤로 보이는 집은 다부론이 돈벌어 새로 지은 집이다.
우즈벡 가옥들은 보통 겉치장을 하지않고 내부에 더 신경을 쓰는 편이다.
동네에서는 제일 깨끗한 최신식 집이다. 집 짓는데 천만원 넘게 들었다고 했다.
방 세개와 부엌, 거실이 있다.
건평이 50-60평은 되 보였다.
강남에서 이정도의 아파트를 살려면 30억은 있어야 한다.
제 정신이 아니다. 왜 그렇게 비싼지 왜 그렇게 사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안된다.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부인이다.
교사월급이 5-6만원 이란다.
뒤로 가을의 멋스러운 코스모스가 보인다.

다부론의 귀국을 축하하기 위해 친척들이 방문했다.
정말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음식을 차렸다.
빵과 과일, 사탕, 과자, 음료수, 차, 술 등이 보인다.
밖에서는 한참 양고기 요리를 준비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커다란 통은 물통으로 겨울에 난방용으로 사용한다.
바닥에 보일러 난방 개념이 없고 큰 물통을 기름을 떼 데워 그 온기로 난방을 한다.


마당에서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 마늘을 까고 쌀을 고르고 있다.
우리네 시골동네의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오손도손 모여사는 것처럼 정겹게 보인다.

집 마당에서 양고기 요리가 한참이다.
쁠롭이라고 불리는 요리로 우리나라의 볶음밥과 비슷하다.
쁠롭은 야외에서 콘 솥에 남자들이 요리하는 것이 이들의 전통으로 남자들만 보인다.
가운데 도프라는 모자를 눌러 쓴 사람이 보인다.
도프는 뒤로 눌러쓰는게 특징인데 요즘은 주로 나이든 사람들만 쓰고 다닌다.

한쪽 솥에는 쌀을 쪄 쁠롭을 만들고 있고 한쪽 솥에서는 양고기를 튀기고 있다.

거의 완성된 쁠롭(볶음밥)이다.
밥이 익으면 적당한 크기의 과일과 건포도, 양고기 등을 넣고 섞는다.
동네 사람들이 다같이 먹으려면 이런 큰 솥이 필요할 만하다.

도프를 눌러 쓴 아저씨가 어제 잡은 양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아들이 돌아왔다고 집에서 양 한마리를 잡고 동네 잔치를 여는 것이다.

신약성서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가 생각난다.
유산을 받아 타국에 가 탕진하고 돌아온 탕자를 위해 아버지는 새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동네 잔치를 연다.
아버지는 죽은 아들을 찾았고, 잃은 아들을 다시 얻었다며 기뻐하였는데
타국에 가서 돈을 벌어 온 아들이 아니라 다 탕진하고 돌아온 탕자를 위해서도 살진 송아지를 잡았다는데
타국에서 돈을 벌어와 효도하는 아들이 돌아왔는데 양을 잡고 동네 잔치를 열지 않겠는가?



나귀다!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나귀!
구약성서 창세기 22장에 등장하는 나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모리아의 산에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때,
아침 일찍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이삭과 사환과 번제에 쓸 나무를 가지고 움직였다.
나귀가 성서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대목이다.

또한 에스라 2장 67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바벨론 느부갓네살로 부터 포로에서 해방되고 귀환할때
데리고 온 나귀의 수가 6720 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활동시대는 대략 BC 2천년 경이다.
그러나 나귀가 인류사에 등장해 짐 운반용으로 사용된지는 BC 4천년 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시작할때로 알려지고 있다.
나귀는 아브라함보다 2천년이나 먼저 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힘쎈 삼손이 블레셋을 맞아 싸워 일천명을 죽였는데
이때 사용한 도구는 다름아닌 바로 나귀의 턱뼈였다.(사사기 16장 15절)

신약성서에도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어린 나귀새끼 등에 타고 입성했다.

이처럼 성서에서 친근하게 만났던 나귀를 나는 우즈벡 하리즘에서 만난 것이다.
하긴 한국보다 우즈벡이 이스라엘과 훨씬 가까우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당나귀는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다.
그러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전래동화를 통해 우리에게 친숙하기도 하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 48대 경문왕(즉위시기 AD 861-875) 이야기다.
황룡사 9층탑 보다도 덜 알려진 경문왕!
그러나 황룡사 9층탑을 수축한 왕이 바로 경문왕이라는 사실은 더더욱 알고 있는 사람이 많치 않다.
경문왕은 밝을 경에 글월 문자를 쓰는데 말 그대로 글에 탁월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경문왕 귀가 당나귀 귀가 되었을까?
그건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의 귀가 컸기에 삼국유사에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설화내용은 이렇다. 경문왕의 복두(임금이 쓰는 왕관의 일종)를 만드는 복두장이
경문왕의 귀가 계속 커지자 계속 복두를 만들어 큰 귀를 숨기었는데
그가 죽기 전 대나무 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배설을 하였는데
바람만 불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계속 울리자
경문왕은 대나무를 다 베고 산수유 나무를 심었다.
그런데 산수유 나무 숲에서는 '임금님 귀는 길다' 는 메아리가 울렸다는 줄거리다.
그저 어린이들 전래동화 책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내용은 대략 이런 것였다.


한국교회와 감리교단은 대나무인가? 산수유나무인가?


이 설화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교훈은 무엇일까?
경문왕은 최고 통치자요, 글에 밝은 권위자다.
그러나 그에게도 숨기고 싶은 단점이 있었던 것이다.
그 단점을 이야기 한 것이 대나무이다. 대나무는 강직함을 말한다.
경문왕이 대나무를 베고 산수유를 심었다는 것은
강직한 충신들을 버리고 간신배들을 기용했다는 말이다.
자신의 정책의 실수나 한계를 이야기 하는 것을 수용하지 않고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로 처단했다는 것이다.
산수유의 꽃은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대나무는 꼿꼿하지만 산수유의 뿌리는 매우 뒤틀려 있다.
대나무에서 나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는 진실이다. 사실이다.
그러나 산수유에서 나던 '임금님 귀는 길다' 는 허위다. 아부다.
귀가 길다는 것은 장수한다는 의미로 임금님 귀는 길기에 장수 하실 것이라는 아첨이란 말이다.
결국 완변한 사람은 없다. 모두가 부족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 단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문제인데
그것을 지적하는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존심으로 맞선다면 종국에는 더 큰 메아리를 만들어
더큰 낭패를 본다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군사독재에 항거해 민주화를 이룬지 고작 20년이다.
87년 6월항쟁을 기준으로 한다면 말이다.
우리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하면 모두 잡혀갔다.
학교에서 제적 당하고, 군대에 끌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기도 했다.
군사정권들은 군부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대나무는 모두 베어 버리고 산수유만 심었다.
모두가 숨죽여 살때 그래도 기독교는 대나무처럼 꼿꼿하게 하나님의 정의를 선포했다.
또한 맨 앞에서 행진했다. 투쟁했다. 한국 민주주의 역사 한 복판에 기독교가 서 있다.
한국 기독교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한국교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군부를 향해 민주화를 외쳤던 우리의 목소리는 한국기독교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메아리로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교계내의 자정의 목소리를 넘어서 시민들로부터 교회개혁를 요구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상의 빛과 소금였던 기독교가 이제는 밖에 버려져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있다.
교권에 눈 먼 자칭 종교 지도자들은 금품선거, 타락선거로 돈으로 표를 매수하여 교권을 잡고
세습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북한 공산정권을 맹비난했던 이들은 앞장서서 교회를 세습하고 있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사랑을 제일 많이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이율배반적인 집단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감리교학원인 목원대 총장 선거 역시 우리의 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한국교회와 감리교단은 대나무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산수유나무로 살고 있는가?

민주화 20년의 결과가 아파트값 폭등이고, 서울대 입학생이 강남의 부유층 자녀들의 독식이다.
운동꽤나했던 자들은 민노당, 우리당, 한나라당 뺏지를 차고 있고, 청와대, 국회에 입성해 있고,
연봉 1억원이 넘는 공기업에 낙하산 인사로 들어가 있지만 다들 골대를 향해 슛을 못 쏘고 헛발질 뿐이다.
아직도 우리사회와 한국교회의 민주주의는 갈 길이 멀고 험난하다.
당면과제가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완강하고 조중동의 지원사격이 만만치 않다는 변명은 시민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줘도 못먹는 자신들의 무능함과 어리석음을 성찰하지 않는 교만함이 문제다.

한국사회는 아시아 시민들에게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그런데 그나마 저개발국가인 아시아 다른 나라보다는 낫다. 결코 위로가 되지는 않치만...
우즈벡은 카리모프 대통령은 3선에 성공했고, 내년 대선에서도 승리가 확실시 되고 있다.
그를 욕하면 잡혀간다. 모두가 쉬쉬한다.
안디잔의 참혹한 비극이 우즈벡의 독재정권의 실상을 말해 주고 있다.
민주화를 외치는 시민들을 총칼로 무자비하게 살육한게 작년 5월 이야기다.
3천명의 사상자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우즈벡 언론을 차단해 다른사람들을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정작 우즈벡 시민들은 모를 정도로 이들 독재정권의 벽은 높다.
한국에서 돌아간 외국인노동자들은 다같이 정권교체를 조용하게 말했다.
'이런 나라는 없습니다.' '어떻게 20년이나 대통령을 합니까' '일자리가 없습니다.' '경기가 너무 안 좋습니다.'
모두가 나직한 목소리로 내게 이야기했다.

우즈벡 뿐만 아니라 중국, 네팔,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얀마 등등에서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고 투쟁중에 있다.

아시아에서의 한국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나마 민주화를 먼저 이룬 우리사회가 민주화를 요구하는 아시아 시민들을 위해 응답할 수 있는 일은 없는가?
결코 그렇치 않다!
할 일도 많고 할 수 있는 능력도 있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귀가 없어서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결단을 하지 못할 뿐이다.
주님이 지금 이시대에 다시 오시면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잘 안들리면 당나귀 귀처럼 귀를 키우던지'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유사한 내용이 그리스신화에도 등장한다는 것이다.
바로 미다스왕인데 미다스왕이 디오니소스의 스승을 잘 모셔 디오니소스로가 소원을 말하라고 하자,
미다스왕은 만지는 모든 것이 금이 되게 해달라고 요구했고 그렇게 되었다.
그런데 먹으려는 음식에 손을 대면 금으로 변해 아사직전에 이르렀다.
미다스왕은 다시 디오니소스에게 어떻게 하면 다시 원상태로 회복될 수 있는지 묻자
아람왕의 군대장군 나아만이 엘리사를 찾아가 요단강에 일곱번 씻으라는 말에 순종해 문둥병을 고친 것처럼
(열왕기하 5장) 지금의 터어키 팍톨루스 강에 들어가면 낫는다고 일러주었고 그 후 회복되었고 강에는 사금이 생겼다.
부귀영화의 어리석음을 깨달은 미다스왕은 자연으로 돌아가 들의 신인 판과 함께 지내다가
판의 피리 솜씨가 너무 좋아 태양신인 아폴론과 들의 신인 판의 음악 솜씨를 겨루자
심판과 모든 사람들이 아폴론의 승리라고 말했지만 미다스는 끝까지 혼자 판의 승리라고 우겼다.
이에 노여움을 산 아폴론은 미다스의 귀가 잘못되었다며 당나귀 귀처럼 커지는 벌을 내렸다.
미다스왕의 귀가 계속 커지자 그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발사 뿐였다.
이 비밀을 발설하면 죽여버리겠다는 왕의 엄명이 있자 이 이발사는 병을 얻기까지되자.
이를 참지 못한 이발사는 들에 나가 땅을 파고 땅 속에 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외치고 흙으로 메꿨다.
그러나 그 땅에서 갈대가 자라 숲을 이뤘고 바람만 불면 갈대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는 메아리가 울렸다는 내용이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경문왕 귀와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미다스왕의 귀 모두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이 신기하리만큼 흡사하다.

왜 진실은 감추려 하는가?
왜 자신의 약점을 솔직하게 이야기 하고 이해를 구하고 대안을 모색하지 않는가?
귀가 큰 것이 무슨 큰 죄인가?
얼굴 색깔이 다른 것이 무슨 큰 문제인가?
다른사람과 다르다는 것이 공생에 방해가 되는가?


마차를 부리는 나귀 탄 할아버지와 다부론의 중고차 티코가 보인다.
우즈벡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배고픈 현실과 성장을 꿈꾸는 희망이 공존한다.
찬란한 실크로드 문명과 잠자고 있는 현실이 공존한다.
우즈벡은 사막과 오아시스가 공존하고, 황무지와 숲이 공존한다.
우즈벡은 100여개 민족이 공존하는 다민족 사회이다.
카레이스키들! 스탈린에 의해 강제이주된 고려인들도 20만명이 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살지 않는다.
한국에서 국제결혼한 코시안들이 당하는 왕따가 없는 나라이다.
우리보다 못 먹고 살지만 우리보다 성숙한 의식을 갖고 있는 나라이다.
우리의 천민 자본주의가 부끄러울 뿐이다.


다부론이 600만원을 주고 산 중고차 티고다.
영어선생님인 아버지가 출퇴근용으로 사용하는데 돌아온 아들을 위해 사과를 잔뜩 사왔다.

한국의 사과보다 작지만 맛은 똑같다.
사과를 맛있게 먹는 어린이들!
어릴적 정겹던 우리네 모습과 흡사하다.


우즈벡 가옥은 집과 텃밭, 가축우리 등을 갖추고 있다.
텃밭에는 각종 야채를 재배해 자급자족한다.

우즈벡 여성들이 평상복을 입고 행복한 미소를 띄우고있다.
이들의 종교는 이슬람으로 능력되는 대로 아이를 낳는다.
95년 2300만명였던 인구가 10년 후인 05년 2800만명으로 500만명이 늘었다.
10년 사이에 500만명이 늘었으니 해마다 50만명씩 증가한 셈이다.

1인당 GDP가 2만$인 우리는 살기 힘들다고 애를 낳지 않거나 한명만 낳는데 비해서
1인당 GDP가 450$에 불과한 가난한 우즈벡 사람들은 다산을 한다.
인구학회에 따르면 50년 후에 한국의 인구는 3448만명에서 2300년에는 32만명,
2954년에는 한국에 단 한명도 생존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고령화, 저출산의 사회로 진입한 우리사회는 풀어갈 과제가 너무 많다.
그런데 대통령은 힘들어서 임기를 마칠지 모르겠다고 한다.
대통령이 올 봄에 우즈벡을 방문했을때
저 해맑게 웃는 우즈벡 어린이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하고 왔으면 좋았을 것을!



'쁠롭' 볶음밥, 기름밥으로 불리는 밥
밥에 양고기와 과일, 건포도 등을 섞어 잔치날에나 먹는 것으로
남자들은 집 밖에서 여자들은 거실에서 식사 준비중이다.
이들은 '차이'라고 부르는 차를 자주 마신다.
여름에도 물을 끓여 뜨겁게 마시는데 물에 석회석이 많기에 끓여 먹고, 생수를 사서 마신다.

'리뾰쉬까'라는 빵으로 '탄드라'라는 벌집 모양의 진흙가마에서 구운다.

양고기나 쇠고기를 꼬치에 끼워 구워먹는 것이 일반적인 '샤실릭'인데
이처럼 가마에서 쪄 먹기도 한다.

빵과 고기를 가마에서 요리하는 요리사가 다 익은 빵을 빼고 있다.
옆에는 소련제 자동차 '지글러'와 자전거가 보인다.


왼쪽부터 빅토르디, 유라, 다부론, 알리다.
다들 대전에서 일하다 돌아간 친구들이다.
다부론의 귀국과 나의 하리즘 방문에 다부론의 집으로 당장 찾아왔다.
진수성찬으로 차린 점심을 맛있게 먹고 유라 집으로 향했다.
한달 먼저 귀국한 빅토르디와 함께 우즈벡을 가려했던 나는 다른 일정이 생겨 다부론과 귀국하게 되었다.
귀국전 빅토르디는 무료진료소에 와 치료도 받고 우리에게 들뜬 마음을 이야기하곤 했었다.  
유라와 알리 역시 대전에 있을때 우리와 함께 보령 머드축제에도 놀러 다녔던 추억이 있었던 터라
나의 방문을 매우 반가와 했다.

유라는 자기 집에서 모신다며 나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
우즈벡 집은 대체로 거실과, 응접실, 부엌, 몇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진에 나오는 방은 응접실이다.
응접실은 제일 크게 짓고, 주위 친척들이나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하는 장소로 사용한다.
여름에도 양탄자를 깔아 놓는데 형형색색의 다양한 양탄자들은 우즈벡 어느 집을 가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유라는 친구들에게 대전에서 소장님이 오셨으니 저녁에 자기 집에서 파티를 할테니 오라며 여러번 전화를 했다.
유라는 대전에서 돈을 벌어 집을 지었고, 넥시아 중고차도 샀다.
우리식으로 개발지역에 집을 지어 앞으로 재미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비자 만기를 초과해 귀국한 유라는 정식적으로 한국에 다시 올 수 없다.
올 수 있는 방법은 비자를 위조하는 것인데 비자를 위조해서까지 한국에 오려는 이유는
우즈벡에 일자리가 없고 일자리가 있다해도 한국보다 훨씬 적은 월급을 받기 때문이다.
유라는 내년초에 어떻게 해서라도 한국에 다시 오겠다는 의사를 피력하였고,
빅토르디는 당분간 학교에서 수학 선생님으로 일하다 한국에 다시 일하러 오겠다고 말했다.

빅토르디와 친구들은 나를 데리고 근처의 강가로 데리고 갔다.
우즈벡은 바다가 없는 나라이다.
이들이 한국에서 남해, 동해, 서해를 보며 매우 신기해 할만도 하다.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내해인 아랄해는 1960년대 소련의 관계농업으로 인해 물이 줄어들어
염분과 광물질의 급증으로 식수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각종어류도 멸종되어 지구 생태계에 큰 위협을 주게 되었다.
빅토르디도 전보다 훨씬 물이 줄어 연안어업도 줄어들었고,
물이 줄어 여름에는 더워지고 겨울에는 더 추워졌다고 말했다.

1M는 족히 되는 메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 친구는 한국에 가 돈을 벌겠다며 요즘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위 사진 우측에서 세번째 아저씨가 한국에서 온 손님에게 대접해 주겠다며 우리나라 돈 2만원에 샀다.
알고보니 큰 아들이 지금 용인에서 일하고 있는데, 한국에 돌아가면 잘 부탁한다며...
한국에 와서 구보우보에게 연락을 했지만 일요일에도 일이 많아 일을 한다며
아직까지 만나지 못하고 전화통화만 하고있다.
이 아저씨는 둘째아들이 내년쯤 결혼할 예정인데 큰 아들이 한국에서 귀국할 때 꼭 같이 오라며
매우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목화다. 우즈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물이다.
세계 생산량 4위로 총 수출품의 21%로 이들은 '백색 황금' 아라고 부를 정도이다.
목화생산으로 다양한 의류와 양탄자가 풍부하다.

메기를 산 아저씨의 부인이다.
땔깜으로 쓰려고 목화를 잔뜩 쌓아놨다.
이 부인은 남편이 사온 메기를 요리하기 위해 목화를 땔감으로 쓰려고 서있다.

우리네 시골 풍경처럼 밖에서 솥을 올리고 물을 끓이며 요리준비를 한다.

빅토르디는 나무에 메기를 올려놓고 내장을 벗겨내고 있다.
왼쪽은 대우 넥시아로 중고가격이 1천만원 쯤 된다.
귀국한 친구들이 많이 사는 차종이다.
오른쪽은 잡다한 쓰레기를 태우는 쓰레기 소각장인데
흙으로 가마처럼 잘 만들었다.
아저씨 집인데 우즈벡의 평범한 가옥 형태이다.
밖에는 전혀 페인트 칠을 하지 않았다.
실제로 페인트 칠한 집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돈도 들어가지만 사는데 지장이 없는 한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안에는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없게 만들고 각종 장식을 화려하게도 한다.
형식이나 외형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우즈벡인들의 소탈함과 소박함은
허례허식에 빛 좋은 개살구인 우리네 염치문화, 체면문화와는 다르게 와 닿는다.
없어도 있는 척하고 속은 비어도 겉은 화려하게 꾸미려는 우리네 문화와는 정반대다.

요즘 외노센터 후원의 밤 준비하느라 큰 교회들을 찾아 다닌다.
겉에서 보면 크고 화려한데 들어가 보면 다들 교회 건축하느라 빚이 많다느니,
해외선교는 하지만 외국인노동자 선교는 안 한다든지 이런저런 변명을 구차하게 늘어 놓는다.
속빈 강정처럼 느껴진다.
왜 저렇게 크고 화려하게 교회를 짓고, 매달 이자만 1천만원 이상 은행에 내느라 허리가 휘어진다고 할까?
그러면서 정작 이방나그네인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해 10만원 후원하는 것은 인색하다.
교회는 선교를 하는 곳이다.
선교는 하지 않고 교회 유지하느라 헌금을 다 허비하는 주객이 전도된 한국교회의 허상은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양이다. 순한 양, 어린 양!
성서에 친근하게 등장하는 양이다.
뿔이 위로 솟지 않고 밑으로 내려온 것을 보더라도 양이 순하다는 것이 이해가 간다.
맹수들은 뿔로 자신을 방어하지만 양은 자기방어 능력이 없다.
그래서 목동들이 양들을 지켰나보다.

양들을 지키던 요셉! 모세! 다윗!
양치기에 불과했던 이들을 하나님은 민족의 지도자로 인도하셨다.
양들을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며 맹수들로 부터 보호해 주던 양치기들을
이제는 양같이 힘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지도자로 사용하셨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해 충성하는 일꾼을 하나님은 큰 일을 맡기셨다.
역으로 작은 것은 돌아보지 않는 어리석은 일꾼들에게는 결코 큰 일을 맡기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25장에 등장하는 달란트 비유가 그것이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내게 주어진 사역이 작고 볼 품 없는 것일지라도, 남이 보기에 별 볼일 없는 것으로 보일지라도,
한 달란트 일지라도, 하나님의 사역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로또의 대박을 기대하는 허상을 벗어 버리고, 밑바닥에서 최선을 다하다보면 언젠가는 하나님이
요셉처럼, 모세처럼, 다윗처럼 크게 들어 쓰실 것이다.

집 뒤의 텃밭이다.
각종 꽃들과 야채, 과일들이 가득하다.
또한 소우리, 양우리도 있다.
대부분의 우즈벡 농가의 모습이다.

옆집 할아버지가 포즈를 취해 주셨다.
도프 모자를 쓰시고 말과 소 여물을 쑤고 계셨다.
나도 시골에서 자랐고, 소 여물도 많이 주어 보았기에
우리네 70년대 모습을 보는 듯 했다.
흙집 역시 내가 어릴때 살던 집과 다르지 않아 친근하게 느껴졌다.
할아버지는 사진을 언제 줄거냐며 물으신다.
한국에 가면 우편으로 보내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용인에 있는 구보우보가 귀국할때 함께 보내줄 생각이다.

옆집 할아버지와 어린이들이 밝게 보인다.
오토바이에 수레를 연결해 물건을 나르는데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낯선 이방인과 카메라에 호기심과 부끄러움을 보인다.
너무 티없이 맑고 깨끗한 영혼들을 보니 마치 천국에 온 듯 했다.


하리즘에 있는 히바다.
하라즘은 2500년 된 고도로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중의 하나로 도시전체가 유네스코에 등록된 문화재이다.
하리즘은 '붉은 모래'란 뜻으로 뜨거운 사막 위에 건설된 도시임을 알 수 있다.
히바의 이찬칼라다. 학생들이 체조를 하고 있다.


히바의 이찬칼라를 한국에서 일하고 돌아간 친구들과 함께 찾았다.
어린이들은 학교를 가는 날이지만 한국에서 온 손님과 히바를 가겠다며
선생님께 이야기를 하고 학교를 가지 않거나 조퇴를 하고 나와 동행했다.
수도 타쉬켄트에서 서쪽으로 1100KM 떨어져 있는 하리즘.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900KM이니 그 거리가 짐작이 될 것이다.
하리즘 지역은 사막이다. 사막에 2500년전 도시가 건설되었다는 것이 신비하기만 하다.
우즈벡에 살면서 이곳 히바를 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이곳까지 거리도 멀거니와 여행경비가 없어서 이기도 하다.
캄보디아 앙코르 왓트에 갔을때도 정작 캄보디아인들은 돈이 없고 거리가 멀어 앙코르를 못보고 죽는다고 했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국인은 정작 못가고 외국인 관광객들로 가득차니 어디서부터 해결의 열쇠를 풀어야 할 지 난감하다.


히바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알려진 주마 이슬람 성원이다.
5천여명이 함께 예배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매우 크다.
또한 좁은 81개의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42M에 달하는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특이한 것은 213개의 기둥들의 문양이 다 틀리다는 것이다.
제각각의 모습을 가진 기둥들을 만든 기능공들의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10세기에 만들어 졌으니 천년 전에 이런 모스크를 지었다는 것이 경이롭기만 하다.

고도속의 친숙한 티코 자동차! 고대와 현대의 만남! 우즈벡과 한국의 만남!





이찬칼라 안에는 수많은 이슬람 성원과 신학교, 부속건물들이 저마다의 다른 모양으로 뽐내고 있다.



결혼식을 한 신랑신부는 이곳 히바를 찾아 들러리들과 함께 히바를 구경하며,
사진도 찍고 비디오도 찍는다.
그리고 이곳의 마흐무드 사당을 찾는다.
사당에 들어가 기도를 하고 이맘으로부터 축복기도를 받고, 빵을 먹고, 헌금을 한다.
전세계 무슬림들의 평생 소원은 사우디 아라비아에 있는 무함마드의 탄생지인 메카를 성지순례 하는 것이다.
우즈벡 역시 90%가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이다.
여건이 되지 않아 메카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곳을 찾으면
메카를 간 것과 진배없다고 믿을 정도로 이곳을 신성한 곳으로 여기고 있다.

사당 입구에 우물이 있다. 사막의 오아시스다.
뜨거운 태양과 모래 만이 있는 이곳에 우물이 있다는 것은 신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신랑신부들은 사당에서의 의식을 마치고 이곳 우물에서 한 모금의 물을 마시며 목을 축인다.
평생을 함께 할 반려자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를 다짐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히바는 예로부터 양탄지 생산지로 명성을 날렸던 곳이라고 한다.
모두 천연 염색을 하고 수작업으로 옷과 양탄자를 만들고 있다.
색감이 너무 곱다. 그러나 우즈벡 여인들은 더욱 곱다. 그들의 심성은 더할나위 없다.


양탄자를 깔고 벽에 걸고 전통악기들은 연주하고 있다.
음악은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할 뿐만 아니라 신을 찬양하기에 좋은 도구가 아닐 수 없다.







전국 각지에서 이곳을 찾는 것 같았다.
노인들이 많이 보였는데 평생에 한번이라도 찾아야 할 의무감이 있어 보인다.
열심히 가이드의 말을 경청하기도 하고 묻기도 한다.


아침부터 구경하고 점심때가 되어 일행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샤실릭과 국수, 빵과 음료수 등을 시켜 맛있게 먹었다.
내가 점심을 산다고 하니 다들 극구 만류한다.
한국에서 도움음 많이 받았는데 자기들이 손님 접대를 하는 것이 예의라면서 말이다.
참으로 순박하고 예의바른 것이 우리의 정서와 비슷한 사람들이다.
식사 후 이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며 500KM 떨어진 부하라로 향했다.
택시로 4시간 정도 달려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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